이 글은 예수의 가르침,‘서로 사랑하라’를 성경을 위주로 하되 이해하기 쉽도록 보여주기 위해서, 나의 상상을 섞어 쓴 글입니다. 1)예수와 마리아 2) 향유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드라 3) 최후의 만찬 4) 하나님의 계명, 순으로 되어 있고 이 4개중 오늘은 1)과 2)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의 가르침 ‘서로 사랑하라’
1)예수와 마리아
아직 유월절이 되려면 여러 날이 남았지만 예수와 그의 일행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출발하여 여기 베다니에 오늘 도착한 것이다. 예수가 서둘렀던 것은 날로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마리아를 한 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있어 마리아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후계자였던 것이다. 예수가 진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결심을 갖게 된 것도 마리아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결국, 예수가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랑을 실행할 수 있었던, 오직 한 사람, 예수가 꿈에 그리던 여성, 그가 바로 마리아였던 것이다. 열두 제자가 채워주지 못했던 것을 마리아가 했던 것이다.
최후의 만찬과 죽음을 앞두고, 오늘은 이런 마리아를 위해서 무엇인가 알려주고 싶고, 해 줄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말 한 마디가 될지 무엇이 될 지는 아직은 모른다.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동산에서 예수가 둘 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 싶은 것도, 오래잖아 있을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가지고 있는 마음의 십분의 일이라도 표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리아를 위해서····.
부엌에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를 도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계속 예수와 손님들이 같이 앉아있는 방 쪽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뒤, 예수가 저녁식사준비를 거들고 있는 마리아에 눈짓을 보내자 마리아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얼른 부엌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지금 앞동산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앞서 뚜벅뚜벅 걸어가던 예수가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앉아서는 뒤따라오는 마리아에게 눈짓으로 옆에 앉으라 했다. 마리아도 다소곳이 그 옆에 같이 앉았다. 몇 번 와 본적이 있는 곳이다.
“나는 틈만 나면 여기, 베다니에 오고 싶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예수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띠우면서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는 자신이 보고 싶어서란 말을 하려다 참고 입을 뾰족이 내밀고는 일부러 예수의 마음을 외면하는 듯
“예루살렘에 볼 일이 있어 가실 때나 오실 때, 볼일을 보시는 중에도 쉬실 때에 들리시는 거예요. 맞지요?”
“그것도 맞긴 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제대로 한 번 맞춰 볼까요?”
“그래요.”
“이 마리아가 보고 싶어서······”
이 말 한 마디를 마친 마리아의 얼굴모습은 숙연해 진다. 지금 그녀의 가슴은 짜릿해지면서 움츠러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큰 것이 쑥 빠져나간 기분이다.
이 말 한 마디의 의미는 요즈음 마리아의 삶의 전부이고 생활에 활력소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찾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진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마리아에게 알게 해 주었고 마리아도 그것을 알았던 것이고 오늘 그것을 말로 표현한 것이다.
간절한 기다림과 기쁨의 찾음이 만나는 순간은 언제나 환상 그 자체였던 것이다. 또 그것은 마리아가 예수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그를 아는데 원동력이 되어 온 것이었다.
“맞았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다 아는 방법이 있어요. 스승님의 얼굴에 쓰여 있었어요.”
얼마나 똑똑히 보았으면 얼굴에 쓰여 진 것이 보였을까.
“마리아, 저길 보아요. 저 멀리에 있는 산들을. 한 산이 위로 솟구쳐 올라 봉우리를 만들고, 그리고는 내려가서 사라질 듯 하며는 바로 곁에서, 또 한 산이 다시 시작하여 올라가 봉우리를 만들고, 또 내려가고, 그래서 산들이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 가고 있잖아요. 나는 저 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이상해 져요. 내가 여기에 오고 싶었던 것은 마리아도 보고 싶었고 또 저 산들도 보고 싶어 오는 거예요.”
예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리아가 말을 이어 받았다.
“제일 처음의 큰 산은 스승님 산, 그 옆의 산은 마리아 산, 또 그 옆의 산은 베드로 산, 야고보 산, 요한 산·······. 이렇게 이름들을 붙이고 싶은 거죠? 그렇죠?”
“맞았어요. 정말 마리아는 똑똑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평소에 스승님이 말씀하실 때, 저는 귀로 듣기보다 얼굴만 쳐다보게 돼요. 왠지 아세요?”
“내 얼굴이 워낙 잘 생겨서 보고 싶었던 게지?”
“아니. 아니에요. 스승님의 얼굴이 잘 나서 그런 건 아니에요. 섭섭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스승님의 얼굴은 빼빼 마르고 못 생겼어요.”
“정말 섭섭하네, 다른 사람들 다 그래도 마리아만은 잘 생겼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사실이 그런 걸 어쩔 수 없어요. 그러나 마음만은 잘 생겼어요. 아주 잘 생겨서 아름다운 자연을 닮았다 생각해요. 제가 스승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자연을 보는 것이고, 마음을 보는 것이에요. 여러 번 뵈니까 지금은 훈련이 돼서, 얼굴 표정만 봐도 마음을 다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역시 마리아의 통찰력은 대단해요. 저 산들에서 내 얼굴을, 내 마음을 볼 수 있었단 말이지?”
“네. 저 산들을 좀 더 자세히 보아요. 앞의 두 산은, 산이 크고 모양도 잘 생겼는데 그 다음 산들은 아직은 못 생기고 크기도 작잖아요.”
스승과 제자가 산을 통해서 영적인 교감이 이루어 진 것이었다.
예수가 평소에 자연을 예사롭게 보지 않았기에 마리아도 눈여겨보아 온 것이다. 스승이 보는 자연의 세계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이다.
``````````
```````
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자신 못지않게 깨우침을 가졌다는 것이 확인됐을 때 스승의 입장으로서 그보다 더한 가쁨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 앞에 드리워져 있든 모든 안개는 말끔히 걷히고, 서광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운 것이다.
너무 감격하고 흥분되어 키스까지 한 것이다.
(참고: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위의 사실을 적으면서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문구에서 새겨 볼 부분은 첫째로, 복음이 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그 여자가 행한 일이, 잊지 않고 기억해야할 정도로 관련이 깊고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그 여자가 예수의 가르침을 깨치는 과정(발을 닦는 행위)을 복음전파의 본으로, 간증으로 삼으려는 뜻일 것이다.
3) 최후의 만찬과
4)하나님의 계명은 다음에
'자유계시판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식투자는 인문학이다. 왜 그럴까?? (0) | 2018.06.30 |
---|---|
주식투자는 왜 필요한가? (0) | 2018.06.27 |
면소판결 요청서 (0) | 2018.01.14 |
레오나르도 다빈치/최후의만찬/모나리자 (0) | 2015.09.17 |
인간의 자유의지로 보았을 때 이번 헌재의 재판관들은 완전 악(惡)이다. (0) | 2015.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