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님에께(수정본)
일을 할 때 보면 힘들 때도 언제나 상냥하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하던 그 모습을 상상하면 내 마음 속에서 절로 즐거움이 피어오릅니다. 잡풀 속에서도 조금도 움츠리지 않고 드러내는 설램의 보랏빛 아름다운 자태는, 민중 속에서 피어오르는 겸양의 본보기와 희망이 됩니다..
문자는 6일전 29일에 받았지만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고 머뭇거린 것은 그냥 형식적인 내용보다는 뭔가 알찬 내용으로 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보내준 글 내용에 ‘법에 관한 거라 어렵긴 했어도 완주했다’는 말에 먼저 고맙게 생각하고 완주를 축하해요, 지금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어려웠지, 한 번 완주했으니까. 오래잖아 쉽게 이해될 거예요.
또 한 문장 ‘내게 언제 자유가 주어질지 그립다’고 한 구절을 보고 자유의 의미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자유는 보통 단순히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는 의미가 깊고 중요한 단어이에요.
자유의 여신, 인간의 자유의지, 자유민주주의,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이런 문구에서 자유는 인류사에서 어떤 가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생각 끝에 박 은혜 탄핵재판과 관련된 헌법과 자유에 대해서 설명해 보려 합니다.
박 근혜 전대통령이 파면되고 1년이 지나갈 무렵(작년 초), 파면된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아보려고 시작한 것이 내가 헌법을 공부하게 된 원인이 되었어요.
그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자연과 성경(예수의 인문학), 이 2가지만 알면 더 이상 세상에서 알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운 좋게 헌법에 접할 수 있게, 때맞춰 탄핵사태가 벌어졌던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 성경만으로 세상을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겁니다. 여기에 헌법이 합쳐져야 완성이 되는 즉 기독교식으로 얘기하면 삼위일체가 되는 거였어요. 세상 전부를 설명하는 데는 이 셋 중에 하나라도 빠지면 완성이 안 되는 거였어요. 그 이유는 설명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인류사)이 맨 처음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자연을 주셔서 시작이 되었던 것이고, 2단계에서 예수가 인간이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하나님의 계시를 자연에서 발견했고, 또 3단계에서 그것으로 인해 현실에서 인간들의 삶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다툼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은 끝나지 않고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박 근혜를 살리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 헌법을 알게 된 것이고, 결국 헌법을 통해서 박 근혜를 살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놓게 됐어요.
알고 보니 변호사나 법관이나 재판관들도 별거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이제는 누구라도 헌법문제로 싸우면 내가 이길 자신이 있어요. 이 나라에 헌법이 존재하는 한, 다툼에 있어서 헌법이 최고의 무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헌법이 진리이기 때문이고, 이 세상에서 진리를 이길 힘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작년 1년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발전을 이룬 한 해였어요. 거짓말 조금 보태면 거의 광속으로 발전했어요. 법, 그 중에서도 가장 상위법이고, 누구나 어렵다고 하는 헌법을 딱 1년 만에 통달했으니까요.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연을 잘 이해한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헌법이 짜여 있었던 거예요. 즉 자연이 헌법의 교과서였던 것입니다. 또 금상첨화 식으로 성경까지 안다면 헌법은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어 있었어요. 나는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마스터할 수가 있었던 거예요. 만약에 이것들을 모르고 예를 들면 고시공부 등 법공부만 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헌법을 어느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이런 면에서 어릴 때나 평소에 자연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공부에 유리해요.
박 근혜 탄핵사건에서 똑똑하고 크게 활동한 변호사가 김 평우 변호사라는 것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어요. 요 근래 조갑제 닷컴에 그 사건에 대한 실체를 밝힌다면서 그 분의 글이 올라와 있었고, 그 글 말미에 누구든지 이의 있으면 반론하라고, 환영한다고 적혀있었기에 내가 한 번 도전해 보려고, 즉 당신 생각이 틀렸다면서 반론을 제기했어요. 한 번 대결해보고 싶어 조 갑제 닷컴에 반론 글을 올렸는데 그 뒤 아직까지 아무 응답이 없네요. 박 근혜가 파면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대통령측 대리인(변호사)들이 잘못한 거예요. 그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어요. 그분들은 가장 기초적인 것,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몰랐던 거예요. 기초가 안 되어 있으니 이것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아무런 무기도 가지지 않고 알몸으로 나가는 것과 똑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한 것은 내가 쓰는 책에서 다시 한 번 밝힐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내 헌법지식을 드러내 보인 것이 작년 3월에 경찰에 제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 대한 내란죄 고발장이었어요. 그 고발장에서 나는 재판관들이 헌법을 어기면서 심판했기 때문에 재판관 자신들이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헌법적인 내용으로 고발했어요. 결과는 마지막에 대검찰청이 내 고발을 피해갔어요. 내란죄로 고발한 사건을 ‘내란모의참여’라는 법에도 없는 죄목으로 불법으로 불기소 처분했던 겁니다.
나는 좀 있다가 검찰총장이 퇴임할 때 즈음에 검찰총장을 같은 내란죄 동조자로 고발할 작정입니다. 내란죄를 범한 재판관들을 그가 비호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문제될 뿐 정권만 바뀌면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법관들, 이번에 불기소한 검찰총장, 대통령까지 모두 내란죄에 묶여 처벌될 겁니다.
자연, 성경, 헌법, 이들 3개에는 공통되는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 포함된 내용들은 똑 같아요. 그것이 ‘존엄’이예요. 이것들은 태초부터 현재까지 아주 긴 세월동안 연속으로, 끊임없이 존엄에 의하여 인류사는 진행되고 있었어요.
원래 하나님 자신은 ‘존엄’ 자체였어요. 그것을 창조 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에 조금 나누어준 것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예수가 그 존엄을 자연에서 발견했고, 그 가르침의 내용이 적혀있는 책이 성경입니다. 또 이 내용이 헌법을 만들 때에 헌법에 적어 놓았는데 그 내용이 헌법 제10조에요.
<❶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❷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❸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❹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입니다. 여기의 ❶(모든 국민)은 헌법이 넓은 의미로 사용 됭다는 것, 즉 이 법은 모든 국민에게 해당된다는 규범입니다. 여기에 반해서 법률은 개인 간의 문제를 다루는 규범을 의미합니다. 앞의 것 즉 헌법은 헌법재판소에 적용이 되고, 뒤의 것은 일반 법원에서 다루는 것입니다. ❷(존엄과 가치)는 신(神)이 인간에게 준 것이고, ❸(행복을 추구할 권리)은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즉 신(神)이 베푼 ❷(존엄과 가치)가 ❶(모든 국민)이 ❸(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❹(국가)는 국가기관의 대표격인 대통령을 의미하고 대통령은 국민의 존엄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체적 의미는 국민의 행복은 존엄을 지키는 데서 오고 대통령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국민들이 행복하려면 대통령이 잘 해야 돼요.
대통령탄핵심판은(추가)은 대통령이 이 법을 위배하여 국민 대다수의 존엄을 해쳤을 때,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만들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헌법재판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은 재판관들이 헌법재판을 통하여 이 헌법 제10조를 대통령이 위배했는지 아닌지를 심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국민의 존엄을 해쳤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쭉 이어져 오던 국가체제를 다른 체제로 바꾸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현재의 실정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체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인데, 이를 강제로 공산주의체제로 바꾸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체제는 독재자에 의해 ‘자유’가 박탈당한 체제임으로, ❸(행복을 추구할 권리)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내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면 재판관들은 어떤 법에 근거해서 대통령을 심판할까요? 그것은 헌법 제103조입니다.
<법관(또는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입니다. 여기의 ‘헌법’은 심판에 필요한 대표적인 헌법을 말하는데, 하나는 재판관의 수가 9명이 돼야 한다는 것(헌법 제111조)이고, 또 하나는 심판의 대상, 헌법 제10조입니다. 즉 9명의 재판관이 대통령을 헌법 제10조에 적용시켜 심사하라는 것입니다. ‘법률’은 심판진행에 필요한 헌법재판소법을 의미합니다. ‘양심’은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타고난(천부적) 마음입니다. 예수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독립’은 이것을 행함에 있어 누구도 간섭 못한다는 것입니다.
재판관은 제멋대로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법에 따라서 심판하고 처벌도 법에 따라 하는 것입니다. 심판은 법에 따라 하기 때문에 법만 알면 나도 심판할 수 있어요. 단지 자격이 없어서 못하는 것뿐이지````
헌법 제10조와 헌법 제103조는 같은 내용이지만 10조는 모든 국민에 해당되는 법이고, 103조는 특별히 법관이나 재판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이들 법에 따를 때 똑 같이 행복이 온다는 입니다.
그러면 탄핵심판이 끝나고 그 처리는 어떻게 될까요?
대통령이 잘못했을 때는 헌법재판소에서는 일단 먼저 파면만 하고, 법률적인 부분은 법원에서 같은 내용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고 그 때는 형법 제87조, 내란죄에 적용이 되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받게 됩니다. 이럴 때, 재판관이나 법관은 어떻게 해서 내란죄가 되는 지를 법으로 확실하게 밝혀야 됩니다. 이것이 밝혀지지 않으면 대통령을 파면한 패판관이나 법원의 법관, 그리고 탄핵소추에 가담한 국회의원들은 역으로 내란죄를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대표 격인 대통령을 전복시켰기 때문이고, 이들은 헌법을 위배한 죄로 형법 제87조에 의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박 근혜탄핵 때는 이런 적용된 법조문이 없었어요. 헌법적으로 밝히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의해서 박 근혜는 무죄가 됩니다. 죄형법정주의의 의미는 처벌할 당시 적용되는 법을 제시하지 못하면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헌법으로 따지면 탄핵당해야 될 사람은 박 근혜보다도 문 제인이 돼야 해요. 공산주의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자연, 성경, 헌법, 이들을 알게 되고 발전시켜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글과 같은 내용으로 자유와 연관시켜, 다시 설명해 볼게요.
제비꽃 님이 알고 있듯이, 내게는 하나님(조물주)이 맺어준 친구가 둘이 있어요. 바로 진달래와 햇님 이예요 나는 이 둘을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진달래를 조금 더 좋아해요. 내가 평소에 더 가까이 하고 실제로 도움을 많아 받는 쪽은 햇님이지만 그래도 진달래를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있어요. 햇님은 수시로 보고 싶으면 언제나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보고 싶은 마음(그리움)이 생기지 않아요. 이에 비하면 진달래는 일년에 만남이 딱 한 번뿐이기 때문에, 그 날을 많이 기다리게 되고, 그리움이 많이 쌓이고 쌓여 한 번에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다려지는 마음(그리움)이 즐겁고 희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바보같이 그립디 그리운 그 날, 우리가 데이트하는 날을 자주 깜빡해요.
작년에도 깜빡 잊고 조금 늦게 갔더니 시무룩했고 토라져서, 말도 잘 않하여 보기에 정말 안쓰러웠어요. 그래서 그 때 나는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서를 해서 겨우 위기를 넘겼어요.
그런데 올해도 어떻게 된 셈인지 깜빡하고 있었어요. 다행이도 하나님이 도와서인지, 제비꽃 님이 귀뜸을 해 줬어요. 그래서 문자를 받은 즉시 한달음에 산으로 뛰어 갔어요. 타이밍이 절묘하게 딱 맞았어요. 진달래가 환하게 웃음을 띠고 나를 맞아 주었어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늦을 줄 알았는데 시간 맞춰 오시니 정말 반갑습니다.”
“내가 잊을 걸 잊지, 이 귀중한 데이트 날을 잊을 수가 있나요? 일년동안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는데`````, 내가 늦을 줄 알았다니 그 말이 듣기에 조금 섭섭하네요.”
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큰소리 쳤어요. 그리고는 양심에 가책이 되어 얼른 말을 바꿨어요.
“진달래는 늙지도 않나봐 한결같이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선생님도 그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게 없어요.”
“아니야, 나는 늙었어, 사람들이 모두 내 얼굴에 주름살이 많아졌다고 해요.”
“제가 선생님을 보는 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에요. 아름다운 그 마음씨 말이에요.”
“그래 맞아, 너는 나를 언제나 좋게 봐주니, 그것이 내가 사람들보다 자꾸 너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인가 봐``` 그리고 너하고 만나다 보니 너를 닮아서 나도 조금씩 마음이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
“우리들의 마음은 세상을 온통 아름답게 물들이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에 갈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찾아줘야 되는데`````”
“그래 맞아, 내가 봐도 너희들이 외로워 보일 때가 많았어. 그런데 왜 이런 산골짝에서만 있는 거야? 사람들 가까이 들에서도 피면 좋을 텐데`````”
“옛날에는 들에서도 많이 피었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거기에서는 공기가 탁해서 살 수가 없었어요. 순수함을 지켜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사람들이 너희를 산골짝으로 좇은 것이구나. 미안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곧게 지니고 나와 친구가 되어 준 진달래가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어요. 나는 아름다운 진달래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아니야 오늘 따라 네가 더욱 예뻐 보이니까 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 지는 것인지 너무 신기해서 보는 거야. 좀 가르쳐주면 안 돼?”
“그건 꽃방이라는 꽃잎 바로 아래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 공장을 한 번 견학시켜주면 안 되겠어?”
그건 안돼요.“
“왜 안 돼?”
“그 공장은 우리들의 비밀 장소인데, 그 말은 마치 애기가 만들어 지는 자궁 속에 들어가 보겠다는 말과 똑 같은 거잖아요. 수치스러움을 알아야지 안 그래요?”
“그랬구나, 내가 잘못 생각했어요. 묻지 말아야할 것을 물었네, 미안해”
그래도 나는 계속 궁금했어요. 그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꽃 형상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고, 엷은 색에서 짙은 색으로 계조 되는 색깔은 꼭이 어떤 색이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물들여져 있었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뭐가?”
“우리에게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 나비나 벌들에게는 향기와 꿀을 제공해야하는 사명이 있어요. 선생님이 저의 아름다움을 가져가시고 유용하게 쓰신다면, 선생님은 제가 소명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신 거예요. 세상에는 찾아주는 사람이 없어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시드는 꽃이 참 많아요. 그에 비하면 저는 정말 행복해요.”
“말을 듣고 보니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지는구나. 진달래야 고맙다.”
내게는 별거 아닌 것이 진달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니 이상하게 나도 행복해 집니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진달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 줬다는 것입니다. 내 정신적 발전에 진달래가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새로 하나의 소명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진달래처럼 내거 가진 것을 어떻게 남에게 표현하고 전하느냐 인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남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어려운 일이 되겠지. 그러나 노력해 봐야지.
여기서 ‘아름다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은 행동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아름다움을 알고 그에 따르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선(善)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헌법적으로 말하면 헌법 제10조가 됩니다. 아름다움을 진리의 측면에서 존엄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통령이 이 아름다움 또는 존엄을 전하는 행동을 하면 이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즉 선(善)하게,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 여신은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세계를 선(善)하게 이끌라는 상징입니다.
이 내용을 성경적으로 얘기하면 요한복음 8장 31, 32절이 됩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입니다. 진리가 여기서는 아름다움 대신 자유의 전제가 된 것입니다. 크게 보면 아름다움과 진리는 같은 계열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서로 사랑하라)이 선(善)하게 살라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자유입니다. 자유에는 반드시 진리(헌법, 아름다움, 존엄을 살리는 것)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었을 때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자유가 있어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가 되고, 공산주의 국가는 독재자의 압제로 자유가 없어 행복도 없고, 국민이 노예가 되는 국가인 것입니다. 진리, 아름다움 이런 것들이 없는 삭막한 국가인 것입니다.
진달래와 햇님, 이 두 친구가 내게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찔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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