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his Mysteries
He was in the beginning with God.
(and he was God) 2018의
스
최후의 만찬 터 그림
리 모나리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2017년이 지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세기의 원년에 탄생한 예수의 인문학(신학) 은 도대체 어디에 숨겨져 있는 것일까? 최고의 인문학,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인문학 그것이 찾고 싶은 것이다. |
머리 글(상)
여기 시작 글 제목에 ‘서문’이라고 쓰지 않고 ‘머리 글’이라고 쓴 것은 이어지는 본문 글은 몸통 글이라는 뜻이다. 몸통 글이라 해서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도 심장 글, 밥통 글, 신경 줄, 사지(四肢)글 등 인간에게 꼭 필요한 중요한 글들이 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나뉘는 것은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다. 머리글을 우선적으로 읽고 필요하면 부족한 부분을 몸통 글에서 선택하여 읽으라는 뜻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굳이 전부를 읽을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런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틈을 내어 전체를 차근차근히 읽어 본다면 그 만큼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머리글은 소프트웨어, 몸통 글은 하드웨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의 글들은 자연을 통해서 느낀, 내 생각을 적은 글이지만, 원래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터라 혹 이 글이 마음에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넓으신 아량(雅量)으로 이해해주시기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예수의 정신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는 성인에 걸맞은 이름값이나 한 것일까?
전 세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은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게, 순수한 인간적인 예수에 관한 책들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 인간 예수, 예수 인문학 등이 그에 관한 것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책들이 출판되면 어느 때나 대체적으로 잘 팔리는 편이고, 더러는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2000여 년 동안 사람들은 왜 예수에 대해서 많은 관심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가 진짜 신(神)인지 아니면 인간인지가 궁금해서일까?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서 그가 성인이 된 것일까?
또 하나 의문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 일게다. 이것을 제대로 모르면 그 사람은 바보가 되기 십상이다. 이를 구분 못하고 쓰인 책들이 예부터 지금까지 부지기수다.
이들 의문에 대한 대답을 간단히 얘기하면 이렇다.
조물주가 심심하여 하나의 이야기(말씀)을 만들어 보았다. 창조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대로 만들어 본 것이 지금의 이 세계다. 세상을 조물주가 창조한 것이다. 창조의 대표성이 있는 인간도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조물주는 창조의 과정애서 어떻게 하면 세상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심에 고심을 더하였다. 그러나 전능한 조물주도 처음의 창조에서는 실패했다.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만든 창조의 세계가, 재미없는 밋밋한 세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원래 인간의 재미는 두 가지였다. 그 중에 하나가 정신적인 것, 즉 선(善)이었다.
무조건 선(善)만 있으면 인간을 포함한, 생물 모두가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에 특히 지각이 있는 인간이 그랬던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명력이 없었던 것이다. 빛이 필요했던 것이다.
선(善)이 또렷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존재한 것이다. 아니 사람들이 선(善)이 있는지 조차도 느껴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조물주가 다시 고심하고 연구한 끝에 기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악(惡)을 만드는 것이었다. 악이 선의 거울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거울을 통해서 악을 뚜렷이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선과 악, 양쪽 모두를 더 강하게 뚜렷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과 악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동시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의지를 함께 주어, 인간 누구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삶을 진짜 흠뻑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기막힌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악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선도 지금의 약한 것을 어떻게 더 강하게 할 것인가 이다.
그래서 다시 고심하고 연구가 잘 진행되어 만든 세계가, 창세기의 마지막에 악(惡)을 만들어 놓았고 선(善)은 악이 확실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했다.
그런데 이것이 조물주로서는 큰 모험이었다. 악(惡)까지는 창조의 과정이라 직접 해결할 수 있었으나 선(善)이 문제였다. 이미 창조는 다 끝난 뒤라 조물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가 해결이 되려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자연 속이 있는 약한 선(善)을 인간들 중에 누군가가 찾아 밝혀, 사람들에게 강하게 어필시켜 줘야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생명의 바람을 불어 넣어줄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이게 잘못되면 세상은 온통 악으로 들끓게 될 것이고 창조는 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큰 모험이었던 것이다.
이 때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이 도와서 예수가 나타난 것이다. 서기 1년, 세기 원년이었다. 서기 1년이라고 정한 것은 예수의 진가(眞價)가 몇 년 뒤에나 나타나려는지 그것을 헤아려 보기 위해서다. 오늘까지 거의 2018년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확실히는 알 수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창조 속에 뭔가가 있을 것만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때에 예수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혹시 예수는 그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관심이 쏠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인간들 중에서는 제일 똑똑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하나님(조물주)의 아들이라고 일컫게 된 말이 거기서 나온 말이다. 똑똑한 예수가 아들 같아서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의도를 잘 알고, 뭔가를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예수는 인간이면서 또한 신(神)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예수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惡)은 예수가 인간이 아니라 차라리 신이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 의해서 조금 다르게 만들어진 예수 신(神), 그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보다도 예수그리스도를 더 추앙하고 따랐다. 예수의 가르침은 기껏 인문학뿐이었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인간들에게 복도 주고, 죄를 지어도 구원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나 죄를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쁜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쓰고 싶어도 잘 몰라 더는 쓰지 못하고, 계속해서 따분한 인문학에 해해서만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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