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내 고향 대구 비산동은 옛날에는 ‘날뫼’라고 불렸다. 날아가는 산이라는 뜻이다.
동내 뒤에는 산이 있어 겨울에는 북풍을 막아주었고, 동내가 남향이다 보니 전체가 따뜻한 동내였다.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옛날에는 이런 환경이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마을 옆으로 철로가 깔려있어 기차가 다녔고, 기찻길 양쪽에 작은 못 큰 못, 못이 2개 있었다. 작은 못은 마을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주로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었고, 큰 못은 붕어 잉어 등 고기가 많아 낚시터가 되었다.
동내 이름이 ‘날뫼’라고 한데는 전해오는 내력이 있었다.
어느 날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중에서 큰 바람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산이 날아가더라는 것이다. 아낙네들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어! 산이 날아가고 있네”하고 소리치니 날아가던 산이 갑자기 멈추고, 사뿐히 땅에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동내이름이 ‘날뫼’라고 불렸다는데, 얼마 전부터 지금의 ‘비산동’이라는 행정상의 이름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날아가던 산은 마을 앞에 떨어져 지금의 달성공원이 되었고, 거기서 씨름대회, 그네타기, 소싸움 등 각종 대회가 자주 열렸고, 나는 그런 대회가 있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구경 갔다. 이 때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이었다.
학교가 집에서 약 2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서둘러 학교에 가야했고, 오후에 학교파하고 집에 올 때쯤에는 녹초가 되었다. 도시의 거의 북쪽 끝에서 시내를 통과하여 남쪽 끝까지 가는 거리였다.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었던 것은 거리가 멀기도 했지만, 가지고 다닌 책이 무거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책가방을 들지 않고 책들을 보자기에 말아서, 허리춤에 애기를 업듯이 붙들어 매고 다녔던 것이다. 언제든지 이 작업은 우리 할머니가 챙겨주셨던 것이다.
이야기는 중3 때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도 학교에서 돌아온 후 뒷산에 올라갔다. 피곤할 때는 주로 뒷산에 올라갔고, 시원한 바람도 쏘이며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피곤함을 잊는 데는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이 최고의 약이 되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어느 사이 피곤함이 소리 없이 달아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날은 한참을 생각했는데도 쉽게 풀리지 않아 오래도록 앉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마을 쪽에서 사람이 한 사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얼굴은 보지 않고 옷차림만 봐도 동내 사람 누구인지를 다 안다.
그런데 지금 올라오고 있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듯 중간지점 정도 올라왔을 때, 얼굴이 보이자 낯선 사람인 것을 알았다. 분홍치마를 입은 내 또래의 처음 보는 소녀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목에 붕대 같은 것을 많이 감고 있었고, 유난히 긴 치마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치마가 길어 땅에 끌다시피 하면서 올라오는 것이었다. 얼른 봐서는 감기로 앓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길이 내 쪽으로 올라오는 오솔길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가까이 올수록 얼굴이 똑똑히 보였고 눈은 먼 산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눈을 아래로 깔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지만, 호기심은 계속 소녀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내 옆을 스치듯 지나 10m 정도 더 올라가서는 조금 전에 내가 동내를 보면서 세상을 생각했듯이 동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30분 가랑을 같은 모습으로 지체한 후에, 아무 말 없이 내 곁을 지나 다시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소녀가 사라진 뒤에야 나는 생각했다. 낯선 동내에 왔으면 무언가 물어볼 말도 있었을 것이고, 어쨌든 간단한 인사라도 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다.
소녀가 내려가고 없는데도 내 머리 속에는 이상하게 그 긴 분홍치마를 끌면서 내려가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정말 그 날은 평시에는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다음날 학교가 파하자 빠른 걸음으로 집에 왔고, 도착하자마자 뒷산으로 올라갔다.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 소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시간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려본 적이 없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땅거미가 질 것이고, 도리 없이 나는 쓸쓸함을 가슴에 안고 마을로 내려가야겠지 하고 생각하니 맥이 풀린다.
그 때였다. 마을 골목에서 분홍치마가 눈에 들어왔다. 먼 거리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분홍치마가 눈에 익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걸음이 아주 느렸다. 오늘은 또 어디가 아픈지 두 팔로 노인들처럼 등짐까지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이 올수록 걸음은 더 더뎠다. 가까이 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어제보다 3배정도 길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반가웠다. 내가 고개 숙여 살짝 인사하니 은은한 미소로 받아 주었다. 그것뿐 어제처럼 내 옆을 스쳐지나 10m 정도 더 올라갔다. 내 생각은 같이 따라 올라가고 싶었으나 혹시 혼자 생각에 방해될 가봐 그러지는 못했다. 그만큼 내 인사에 잠시 미소만 지었을 뿐 표정은 내내 어두워 보였다. 아무래도 몸이 정상이 아닌 듯 보인 것이다. 1시간가량을 앉아서 보낸 후, 일어나는 기색이 보였고 내려오는데 보니 올라올 때처럼 뒷짐을 지고 있었다.
내 옆을 스쳐지나 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앉아있는 내 앞에 정면으로 딱 막아서서는 뒷짐을 지고 있던 팔을 앞으로 내미는데, 그 손에는 책이 한 권 쥐어 있었다. 내가 받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책을 내민 상태에서 말은 않고 두 눈으로 내 눈을 뚫어지게 쏘아본다. 나는 순간 놀랐고 그 눈빛이 약간 무섭기도 했다.
내가 책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책을 내 가슴팍에 던져주는데 손은 힘이 없는지 떨리고 있었고, 이제 그 눈은 조금 전에 그 강렬했던 눈빛은 어디 갔는지 사라졌고, 애가 타는 듯한 눈빛을 주고는 돌아섰다. 걸어 내려가는 모습이 힘들어 보인 것은 끌고 가기엔 분홍치마가 길었기도 했지만, 뭔가 모르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내려가는 모습이 비틀거렸고 자칫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마음 역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중에 후닥닥 지나간 것이었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쥐어진 책을 살펴보았다.
책은 새 책이 아니라 손때가 묻은 낡은 책이었고, 표지에는 ‘상록수’라는 책제목이 적혀있었고, 심 훈 씀이라고 저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책이 너무 낡아있어, 선물이라 하기엔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왜 이런 낡은 책을 나에게 주는 것일까? 이상하였다. 책장을 한 장 넘기니 ‘봄아 오면’ 이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에 ‘백 정숙’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뿐 다른 곳에는 쓰여 진 글이 아무 데도 없었다. ‘백 정숙’은 소녀의 이름이라고 짐작이 되었지만 ‘봄이 오면’은 어떤 의민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산을 내려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봄이 오면 그 때 다시 오겠다는 그런 약속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아까 소녀가 보여준 것들은 작별인사였었고, 책은 그냥 헤어지기엔 서운하여, 선물을 주고 싶은데, 준비하기엔 시간이 없었고 가진 것 중에 찾은 것이 그것뿐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많이 낡았지만 그것도 마음의 표시라면 낡은 것이 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선물을 받은 것은 분명한 것이니, 그 마음이 정말 놀랍고 고맙게 생각되었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드니, 그냥 있을 수 없어, 저녁을 빨리 먹고 아쉬운 마음에 혹시나 싶어 골목 여기저기를 서성대며 걸어 다녀 보았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산에 올라가 웅크리고 앉아 기다려 보았지만 소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빠른 시일에 만나기는 포기하고 약속대로 봄이 올 때를 기다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20일 정도만 기다리면 3월이 될 것이고, 넉넉잡아도 한 달만 기다리면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는 내가 좋은 것으로 하나 선물해 줘야지, 지금부터 준비해두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르게 마음은 조급했다. 당장에 소녀가 누구였으며 그 뒤의 일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 날 이후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가 제일 만만하였고 또 할머니는 마을 정보를 알아내는 데는 전문가이셨다.
우리 동내는 전부 오씨 집안이었다. 옛날 중국에서 한 무리의 오(吳)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해주에 건너왔고 남하하는 도중에 지금의 의성에서 터를 잡았는데, 일부가 떨어져 나와 지금의 우리 동내, 날뫼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3가정이었던 것이 남자들이 외지로 나가지 않아, 세가 불어나 120여 호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마을 뒤쪽에 배씨 성을 가진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6,25사변 때, 기차를 타고 피난 중에 대구 까지 왔을 때 대구역이 복잡하여 기차가 역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중에 열차에서 내려 우리 마을에 정착한 가정이었다. 나는 그 집의 배 효렬이라는 아이와 초등학교 6학년을 같이 다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는 집이다. 나는 공부도 잘하는 효렬이가 좋았고 우리는 가끔 달성공원에 같이 놀러가기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소녀의 집안이 바로 이 배씨 가족과 친척이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소녀에 대해서 알아온 정보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소녀는 목에 괴상한 돌기가 하나 생겼고 그것이 차츰 커지면서 목을 조이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이 밀양인데 부산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빨리 수술을 해야만 하는 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수술비가 엄청 비싸 돈을 마련하느라 수술을 바로 못했다는 것이다.
수술비를 겨우 마련하여 병원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의사가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는 것이다. 때를 놓쳤다는 것이다. 소녀를 어떻게든 살려봐야겠는 생각으로 부모가 의사에게 매달리니, 의사가 서울 쪽에 수소문하여 큰 병원을 소개해 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녀는 수술 받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다는 것이다. 수술비 땜에 부모가 애를 쓰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런 소녀를 억지로 기차에 태워 서울로 가는 중에 소녀가 너무 괴로워하여 잠시 쉬어갈 량으로 대구에 들린 것이라고 했다. 소녀는 이 때 이미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병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정에서 2일간의 나와의 만남이 있었고, 다음 날 서울로 다시 출발했으나 도중에 소녀는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나와의 만남 이틀째 날은 꼼짝하기 힘든 상태여서 부모들이 적극 말렸는데도 나갔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소녀의 죽음을 재촉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죄를 지은 기분이 되었다.
나하고 만난 그 이틀이 소녀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들이 되었고, 그것을 나와 함께해 주었던 것이다. 선물까지 주면서······,
소녀가 죽었다는 말을 내가 들었을 때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비록 남이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고, 내가 태어나고 처음 경험해보는 죽음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헤어질 수도 있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만남도 그랬고, 헤어짐 또한 나에게는 너무나 급작스러운 것이었고,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꽃봉오리 같은 소녀가 나래를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조용히 접어야 했다니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천행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게 다시 기회가 온 것이다.
2년이 지난 때였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 당시 칠성동 굴다리 옆에 있는 ‘대본 제작소’라는 자동차 부품(piston pin) 만드는 공장에 다닐 때였다. 제품의 질이 좋아 일본에서도 주문이 많았다. 일이 바빠 매일 잔업을 했다. 잔업하고 귀가하면 빨라도 저녁 10시 반이 넘었다. 잔업을 했을 때는 월급이 평시 때의 2배가량 되었기 때문에 악착같이 하느라, 마음은 산에 가고 싶어도 틈이 없었다.
그러든 어느 날, 공장의 전체적 동력인 모타가 타버렸다. 교체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 날은 일찍 퇴근하였다.
날씨도 화창한 봄날이라 좋았고, 기분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산을 향했다.
마을을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들면서 산중턱을 힐끗 처다 보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죽었다든 소녀가, 분홍치마가 산중턱 골짜기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나는 이게 꿈인가 싶어 양손바닥으로 뺨을 때려보았다. 확실히 꿈은 아니고 현실이었다.
나는 최대한 속력을 내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려 중간지점을 지날 때도 분명 분호치마였다. 그러든 것이 가까이 갈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가서야 그것이 분홍치마가 아니고 무더기로 핀 진달래꽃인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이 바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것들이 나를 깜빡 속였잖아/
분을 못 이겨 나는 발로 꽃들을 사정없이 차기 시작했다. 꽃잎이 추풍낙엽처럼 사방에 흩어 떨어진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꽃은 아무 죄가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소녀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앗차’하고 머릿속이 번쩍했다. 꽃은 정상적으로 핀 것이고, 분홍치마는 ‘봄이 오면’ 약속대로 찾아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단지 한 번 죽음은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기에, 진달래꽃으로 변하여 분홍치마를 입고 왔던 것이다.
/아! 그랬구나/
나는 허리 굽혀 떨어진 꽃잎을 하나씩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분홍치마 소녀야, 내가 잘못 알고 너에게 상처를 줬구나. 많이 아팠지? 너는 아픈 중에도 나에게 큰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구나/
그것은 세상에 핀 진달래를 다 합치면 그것이 희망의 봄이 되고, 그 진달래로 수놓아 옷을 만들어 입으면 그것이 멋진 분호치마가 된다고,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움의 중심에는 진달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주운 꽃잎으로 땅바닥에 하-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면서 생각했다.
/세상 끝날 때까지 분홍치마, 진달래 너를 좋아할 거라고······,/
내 친구, 분홍치마 진달래야!
오늘이 2020년 1월 21일, 아직은 겨울이지만 오늘따라 날씨가 포근하니 봄이 생각나게 되고 더욱 너를 기다려지게 하는구나.
그 마음으로 지금 여기, 아포 산 아래에 있는 베이스 켐프, 봉자 카페에 앉아 라떼 한 잔 앞에 놓고, 창밖에 건너편 국사봉을 보고 있으니, 오늘은 분위기가 너무 좋아 못 견디게 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지는구나. 그 동안에도 여러 번 너를 생각하는 글을 쓰려고 했지만 이제야 쓰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더 좋게 쓰려고 미루어 왔던 거야. 늦었다고 섭섭해 하지는 말아요.
벌써 세월은 수십 년이 금방 지나가 버렸구나. 그 동안도 그냥 무심하게 지내버린 건 아니야, 매년 봄이 오면 진달래, 네가 보고 싶어 산에 갔고, 가서는 그 동안의 일을 서로 들어주며 대화도 했었지. 너는 목이 아파 얘기는 못하고 얘기는 주로 내가 다 했지만 ······,
곧 봄이 올 것이고 봄이 오면 또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으니 너는 나의 변함없는 친구야. 봄이 오면 네 옆에서 ‘봄이 오면’ 노래를 또 부를 거야,
그 때 너와 헤어진 후 한참 뒤에야 ‘봄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우리 가곡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 노래를 잘 모르던 내가 그 노래를 불러보려고 무진히 애를 썼단다. 그 덕에 배우긴 했지만 언제나 나는 1절이 체 끝나기도 전에 노래는 중단되고 말았어. 네가 생각나 목이 메었기 때문이야.
그 때 죽음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남은 이틀을 나와 함께 보내면서, 너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생각했던 것이야, 그래서 내게 책을 선물했던 것이고. 그리고 그것으로 네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일(임무)을 마무리 했던 것이야.
그런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책, ‘상록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책 속에 담긴 다른 이야기였어요. 그 이야기의 제목이 ‘봄이 오면’ 이었던 거예요. 네는 그 이야기를 멋지게, 재미있게 나에게 했지만, 나는 그 때는 얼른 알아듣지를 못했어요. 목이 아파 얘기를 말로는 하지 못하고 눈과 표정으로 어렵게 했기 때문이야. 그 때 알아듣지 못했던 것을 지금 차근차근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제목을 너는 ‘봄이 오면’이라고 했지만 나는 ‘내 친구, 분홍치마 진달래’로 바꿔 버렸지. 처음에는 ‘분홍치마 소녀’라고 적어도 봤지만 바꾼 것은, 아무래도 나는 너를 끝날 때까지 내 친구로 두고 싶었기 때문이야.
‘분홍치마 소녀’도 처음에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긴 분홍치마를 입고 바람을 일으키며 네가 봄을 몰고 왔기 때문이야. 너를 봄의 여왕이라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 설마 그 긴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를 하객으로 앞에 앉혀 놓고 결혼식 분위기를 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 나이가 어렸으니까. 그래도 혹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 너는 생각이 깊었던 소녀였으니까요. 내가 놀란 것은 주위 사람들이 너의 병을 고쳐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너는 그 돈이 아까워, 가족에 부담이 될까봐 한사코 수술을 거부했던 거야. 나는 그 뒤에 할머니가 일러주신 정보를 듣고 알게 되었던 거예요. 너는 정말 착한 소녀였어요.
그리고 또 똑똑한 소녀였어요. 더 중요한 것이 또 있었어요. 책 선물에 대해서 다시 얘기하고 싶어요. 죽음을 코앞에 둔 그 와중에도, 나에게 책을 선물할 것을 생각했었다니 정말 놀라운 생각이야. 그것이 너와 나 사이 끊어질 뻔했던 연(緣)을 다시 이어준 것이야. ‘봄이 오면’ 이라는 그 멋있는 제목으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단다.
‘봄이 오면’ 이라는 제목도 좋았지만, 특히 내가 놀란 것은 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분홍치마를 입고 직접 출연해서 연기했다는 것이야. 내가 보기엔 진달래꽃으로 수놓은 긴 분홍치마를 입은 너는, 정말 우아해 보였고,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었어. 나는 처음에 네가 피워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활짝 핀 꽃이었어. 예쁘디예쁜 활짝 핀 진달래꽃이란 말이지. 너는 결코 쓸쓸하게 떠난 것이 아니야, 할 일을 다 했고 지금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금도 봄이 오면 그 긴 치맛자락으로 봄을 몰고 와서는 숲의 너의 이웃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나하고는 재밌는 얘기도 하면서······,
저기 산 중턱의 숲은 우리가 만나는 아지트이기도 있지만 그 곳에는 내가 대화할 수 있는 제비꽃, 조무래기 새들, 다람쥐 등 많은 친구들이 있지. 내가 그들과도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너의 덕택이야. 네가 배려해준 덕분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지. 내가 너의 친구라는 것을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기에, 쉽게 내가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거야.
내 고향 날뫼는 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그 모습이 다 사라지고 없는 지금, 너도 만날 수 있고 친구들도 많은 저 숲은 나의 제2고향이 되었어요. 이것이 전부 너의 덕택이야. 너무 고마워서 이번 봄에는 라떼 한 잔 대접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그걸로 보답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
책 선물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어요. 그 뒤로 한 동안은 계속 산에 갈 때마다 책을 들고 갔고, 심심할 때마다 너를 생각하면서 펼쳐 읽었지. 그 당시 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네가 준책이라, 아마 적게 잡아도 수십 번은 읽었을 거야. 그 덕에 잘은 못쓰지만 지금 이만큼이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은 순전히 너의 덕택이야. 정말 고맙게 생각해.
라떼 한 잔만으로 모자란다면 과자 한 봉지도 끼워 줄게. 내 마음이니 받아주기 바래요.
오늘은 이만 쓸게, 빠진 부분은 생각나면 다음에 또 쓸게,
그 때까지 안녕,
내가 좋아하는 분홍치마 친구, 진달래에게
2020년 1월 24일
o kh
(주: 왜 이렇게 내가 진달래와 좋은 사이를 가져야 되는가?
진달래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 동물 등 자연들과 나, 우리는 공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가라고 우리 모두에게 조물주가 ‘He’를 주셨던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한 식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서로 생각해주면서 살아갈 때 행복이 오기 때문이다.
산에 핀 진달래는 인간이 그린 것이 아닌 조물주의 창조에 의한 결과물로서 거기에는 진달래의 He, 존엄(尊嚴)과 가치가 들어나 있고, 거기는 조물주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만의 혼(魂)이 살아있는 것이다.
이들 식물 동물 하나하나를 보기만 해도 즐겁고, 대화하고 싶어질 때, 그것이 제2 인생의 시작이다. 그것이 선(善)한 삶이기 때문에 나는 진달래를 좋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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