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회 (2)
“선생님은 인문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듯한데, 여기 와서 처음에 인문학교회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어요?”
나는 인문학, 예수님, 성경 등에 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관심정도만 있다고 할 뿐 더 이상은 내색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반 교회들이 예배를 교리중심으로 한다면 인문학교회는 인문학을 주요내용으로 다루는 교회가 아닐까 생각했고, 질적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맞아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인문학 위주로 교회가 구성되어 있어요.”
“아니, 우리교회라니? 실제로 그런 교회가 있단 말인가요? 아까 들어올 때, 카페 뒤쪽에 짐승우리 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는데, 거기가 교회란 말이요?”
“아닙니다. 거기는 닭장이에요. 선생님은 교회 안에 계시면서도 교회를 모르시네요. 교회다운 꾸밈이 없으니까 모르는 것이 당연할 겁니다. 인문학교회는 유별난 꾸밈 같은 것이 없다는 게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니, 그럼 여기가 교회란 말인가요?”
“네. 주중에는 카페로 운영하지만 이 건물이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대신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처음부터 아가씨가 똑똑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건물 하나를 하루도 놀리지 않고, 카페와 교회로 번갈아 이용하고 있다니, 정말 머리가 좋은 데요?“
“뭘요, 이 정도가지고````”
“아니오. 보통이 아니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깜짝 아이디어에요. 도대체 교인은 몇 명이나 되고 목사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교인은 약 50여명 되고 목사님은 안 계세요.”
“그럼 누가 목회를 합니까?”
“교회 구성원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몇 사람이 열성적으로 맡아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 교회에는 두 종류의 동아리가 있는데, 이 동아리가 주축이 되어 예배를 이끌어 가고 있어요. 하나는 음악 동아리이고, 또 하나는 문학(인문학)동아리에요. 예배의 전체 시간구성이 찬양 50%, 문학이 40% 그리고 기타가 10% 정도로 짜여 있습니다. 이것들을 각각 동아리에서 맡아하는데, 거기에는 특별히 추진위원이 3명씩 있어 그들이 주도적으로 맡아하고 있어요.”
“찬송가는 교회의 것을 그대로 사용합니까?”
“반절정도는 교회의 찬송가를, 나머지는 가곡과 대중가요 중에서 건전한 것을 골라하는데, 이런 곡선정은 추진위원들이 해요. 때로는 외부에서 악기연주나 성악가들을 초청해서 연주할 때도 있어요. 문학 분야는 대체적으로 성경위주로 하는데, 교회와 다른 점은 교리 대신에 인문학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 속에 포함되어있는 인문학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는 예수죽음 이후에 바울 등 신학자들이 만들고 꾸며낸 내용들을 다룬다면, 우리 교회는 예수 생전에 예수가 직접 설파한 것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의 가르침이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분야에 관한 것은 4개의 복음서에만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는 요한복음서를 귀중히 여기고 있어요.
“그럴려면 그 동아리회원 중에 성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될 텐데`````”
“네, 몇 분이 계세요. 그분들은 기존교회의 교인이었다가 목사의 설교에 가끔 반발하면서, 교회를 그만두고 독자적으로 성경을 탐독한 분들이세요. 이 분들의 특징은 예수에 대해서 교회의 목사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카페활동이 활성화되면 평소 교회에 불만을 가진 교인들이 여기에 관심들을 가져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분들 나름대로 많은 공부들을 했겠지만, 그래도 아마추어라고 볼 수 있는데 성경 해석(의견 발표)에 어려운 점이 많지 않을까요?”
“맞아요. 전문가가 볼 때는 미숙한 점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처음엔 그저 성경을 읽고 해석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첩첩산중 이예요. 앞으로 개척해야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요?”
“용어해석이에요. 예를 들면 ‘부활’같은 용어에요. 요즈음 우리끼리 부활에 관하여 많은 논쟁을 하고 있어요. 교회에서 배운 대로는 할 수 없고, 예수님의 뜻에 따라 하자니 간단하지가 않아요. 그저 책만 읽어서는 예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에 와서 이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인문학교회의 존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꼭 전문적인 해답이 아니고, 의견을 개진하는 수준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그 관계에 대해서 좀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분 계신데, 좋다면 내가 만남을 주선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좋겠어요. 추진위원 세 사람과 대체적인 얘기를 한 번 나눠보고 싶어요.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추진위원들과 전화로 연락을 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의논해 보고 결정할게요.”
“알았어요, 그렇게 하세요.”
내 머릿속에는 아가씨와 대화중에도 계속 꽃님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만약에 이 분들이 좋다고 한다면 만나기 전에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정리해 두는 것이 좋겠어요. 이 부분들이 꽃님의 관심분야이니 이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요. 잠시 뒤 아가씨가 돌아 왔어요.
“이렇게 하면 어떻겠어요? 추진위원들이 먼저 개요정도의 부활에 관한 그 분의 글을 받아보고 싶다고 합니다. 어차피 우리끼리는 결과를 보기 힘든 일이니 외부의 글을 한 번 받아보자고 하네요. 그래서 그 글을 검토한 후에 모든 것을 결정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볼게요.”
“제가 선생님을 그들에게 좋으신 분이라고 소개했어요. 그러면 언제쯤 그 글을 받아볼 수 있을까요?”
“가능한 며칠 내로 그렇게 되도록 하겠어요.”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오늘 얘기는 다 끝났지요? 처음의 제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이 카페를 찾아주신 것이 예삿일이 아니었어요. 맞지요?”
나는 미소로 화답하면서 손을 내밀었어요.
“갈게요.”
“안녕히 가십시오. 또 뵙겠습니다.”
현관문을 나서면서 내 발걸음이 가볍다고 느낀 것은 아가씨의 눈길이 나를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어요.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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