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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 Long ago

환오 2022. 10. 25. 18:15

Long, Long Ago(1)

 늦은 총각시절,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에 대구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달성군 다사면 매곡동으로 간다.
 나는 직장이 동촌비행장 81공군 항공수리창이었지만 그 당시 그 곳에 유선방송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기계(전자기기들)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 주말마다 갔던 것이고, 시골중학교 음악선생(백 정숙)은 일요일마다 일직 겸해서 학교에 출근 하였다.
 우리가 인사하고 알고 지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일요일마다 첫차를 타고 만날 수 있었으니 쉽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 당시 부모님이 소일삼아 그 곳에서 상주하며 방송일을 관리하고 계셨다.
 나는 매주 방송사에 도착하면 서둘러 기계들을 살펴보고 점심을 조금 일찍 먹고 학교로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 무렵 백 선생은 올드미스였고 얼굴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그저 수수했지만, 내 마음은 어쩐 일인지 학교에 가서 백 선생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 되어 있었다. 백 선생은 조금 외로워 보였고 화장은 하지도 않고 수수한 차림이지만 호감이 갔고 그저 좋았다. 가끔 부모님이 어딜 그렇게 서둘러 가느냐고 물어볼 때는 나중에 말씀드릴께요로 지나쳐 버린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고 정문에 달린 쪽문을 열고 들어가면 꼭 백 선생은 현관에서 기다려 주었다.
 직원실에서 백 선생은 항상 전축을 틀어 놓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가 올 때즘 현관에 나와 나를 맞아준 것이다. 
 내가 걸상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을 때까지도 우리는 인사말은 없고 힐긋 힐긋 보면서 그저 빙긋이 웃고만 있다. 그러는 중에도 우리 사이를 음악만이 오가며 기분을 맞춰 주었다.
 나는 음악은 별로 취미가 없다. 그래도 그런 내색은 않고 언제나 듣는 척 하였고 가끔 곡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 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 했다. 혹시 음악을 모른다고 하면 나를 싫어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음악을 계속 듣고 있자니 시간이 너무 아깝다. 빨리 지루한 음악을 끝내고 탁구장에 갔으면 좋겠는데, 쉽게 끝나지 않았다. 처음 며칠간은 그래도 짧게 들었는데 날이 갈수록 음악 시간이 길어지니 싫다고 할 수도 없고 정말 음악 듣는 것이 이제는 고역이다.
 그 전에 다른 사람들과 탁구 칠 때는 서로 이기려고만 했기에 재미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백 선생과 탁구 치면 정말 재미있다. 나의 탁구실력은 보통정도지만 백 선생은 보통수준이 넘었다. 
 백 선생은 나와 탁구를 경쟁하듯이 치는 것이 아니라 내 수준에 맞게 상대해 준다는 것을 그 뒤 여러 번 처 본 뒤에야 알았고 백 선생이 남을 배려해줄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맘껏 칠 수 있으니 실력도 향상되었고 공이 채를 쥔 손에 잡힌 듯해서 생각대로 칠 수가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내가 백 선생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았다. 
 
 백 선생 개인 소유의 휴대용 전축 소리가 언제 끝날지 몰라 조급한 마음에 질문했다.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필요한 거예요?”
 음악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으려다 조금 부드럽게 물어 보았다. 나의 이 질문에 백 선생의 응답이 정말 뜻밖이었다.
 “규환 씨는 내가 좋아요?”
 내가 얼떨결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바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잠시 뒤에
“네. 백 선생이 나는 정말 좋아요.”
 나는 솔직히 대답하였다. 바로 처다 보고 대답할 수가 없어 눈을 아래로 깔고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알아야할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뭔데요?”
 나는 그것이 궁금하였다. 그리고 만약에 백 선생이 내가 뭔가 배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난 서슴없이 배우리라 생각했다.
“내게서 음악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만날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 음악 때문이에요. 지금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규환 씨의 마음 깊은 곳에도 음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나와 규환 씨의 그 음악들은 아름다움이고 그것들이 서로 교감하여 웃음이 나오는 거예요. 지금은 서툴지만 곧 잘될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규환 씨의 그 마음이 열려있다는 거예요. 닫혀있는 사람은 그렇게 안돼요.”
“내 속에 음악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그 음악을 빨리 끄집어내어 주세요. 나도 백 선생처럼 되고 싶어요. 그 방법이라도 빨리 가르쳐줬으면 좋겠어요.”
“그 방법은 간단해요 음악과 가까이 하면 돼요. 그러면 자연히 음악처럼 규환 씨의 마음이 아름답게 밖으로 밖으로 드러나고 활성화 되는 거예요.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돼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음악을 들으면서 그 속에 있는 것들을 살피고 조합해보면 그 끝에 세상 살아가는 이치, 자그마한 열매를 얻을 수 있어요. 세상은 넓고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우니까 제쳐두고, 세상을 이해하기 쉬운 음악부터 우선 알아보자는 거예요.”
“잠깐만요. 음악 속에 있는 것들을 살피고 조합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음악의 각 요소들 즉 악기들의 소리, 음색들을 하나하나 구분해서 살피고 그것들이 풀어내는 표현들을 조합하면 하나의 감정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재생하는 매체의 기능이 불량하여 제대로 살필 수가 없다면 문제가 돼요. 맑고 강한 감정을 불러 이르키지 못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전축이 성능이 좋지 않아서 저음부터 고음까지의 모든 음색을 골고루 들려주지 못한다면 좋은 열매를 맺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음악에는 여러 종류의 악기가 사용되는데 그 중에 잘못 전달되는 악기의 소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잖아요. 한마디로 원음 그대로 재현해 내야 한다 즉 음질이 좋아야 된다는 그런 말 아닌가요? 예를 들면 유선 방송에서 각 집에 방송 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에는 증폭기(AMP)가 있어야 되고 각 집에는 스피커가 있어야 되는데 음질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그 증폭기가 중요하다는 말 아닌가요?” 
“네 맞아요. 증폭기도 중요하지만 스피커도 그 못잖게 중요해요. 이 앞에 있는 내 전축에서 좋은 음질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스피커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에요. 전축이 휴대용이라 큰 스피커를 붙일 수 없다는 거예요. 나는 어쩔 수 없어 이렇게 듣고 있지만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절대로 나쁜 전축은 안돼요. 언제 한번 기회를 만들어 규환 씨와 같이 대구에 있는 음악 감상실에 가보자고요. 음질의 면에서는 음악 감상실의 것이 최고에요.”
 “알았어요. 그런데 대구에 갔다가 만약에 우리가 같이 다니는 걸 누가 보면 어떻게 해요?”
“보면 어때요? 나도 규환 씨를 좋아하는데`````”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백 선생이 나를 좋아한다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제 세상을 다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 기분이 좋다. 또 하나 기분 좋은 일이 있다. 나는 백 선생의 전축의 기능에 관한 말이 완전히 이해가 되었다. 전자식으로 얘기하면 증폭기는 주파수 특성이 좋아야 되고 스피커는 주파수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저음용으로 우파를 그리고 고음용으로 트윗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스피커 하나로는 저음과 고음을 동시에 살려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고충실도 상태로서 원음 가깝게 재생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다. 순간 내 머리에 번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내 전자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백 선생에게 이 세상 최고의 전축을 만들어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행복해지고 웃음이 나왔다. 백 선생이 빙긋이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아니, 왜 그렇게 웃어요? 내 말에 뭔가 수긍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에요. 나는 틀린 건지 맞는 건지는 몰라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웃었던 거예요.”
“그게 뭔데요?”
“그건 지금 얘기할 수 없어요. 나중에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예요.”
“아니 규환 씨는 남을 궁금증에 빠지게 해놓고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어요? 빨리 말해줘요.” 
 백 선생이 내 옆구리를 꾹 지르자 더는 참지 못하고
“내가 백 선생께 조그마한 전축을 하나 선물하려고 해요.”
“조그마한 전축? 지금 가지고 있는 휴대용도 귀찮은데, 그와 같은 것을 또 준다고요? 난 받지 않을 거예요.”
“받고 안 받고는 그 때에 가서 현물을 보고 결정해요. 백 선생이 받지 않는다 해도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백 선생이 받도록 만들 거예요.”
“피이-, 선물을 준다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그리고 이제 보니 강제에요? 난 절대로 안 받을 거예요.”
“만약에 백 선생이 받지 않는다면 난 그걸 딴 사람에게 줄 거예요. 이 넓은 세상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백 선생 한 사람 뿐이겠어요?”
“?”
“이제부터는 백 선생에게 받아달라고 사정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알아서 하세요.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엔 안 받았다가는 곧 후회하게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백 선생이 선물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음 주 그 때 까지는 비밀로 하여 끌어가고 싶었다. 또 하나 기분이 좋은 것은 그 동안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가며, 백 선생이 자연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는데 이것이 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받기만 하였을 뿐이다. 나에게도 줄 것이 있다니 그것이 즐거운 것이다. 백 선생은 자연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 두었던 것을, 창밖 멀리 자연을 보면서 열성으로 온전히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백 선생이 좋으니까 공부도 잘 되었고 늘 고맙게 생각했던 것이다.
“어째 이상하네. 처음에는 규환 씨가 선물한다기에 기대를 했었는데 그것이 자그마한 전축이라고 하기에 실망했었고 이제는 받지 않으면 후회한다고 하니 정말 이상하네.”
“음악선생이라는 사람이 전축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거예요? 참 세상에 전축이 싫다는 음악선생도 다 있네.”
 백 선생이 내 얼굴을 요리 조리 살펴보더니 
“규환 씨는 나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죠? 맞죠? 그 전축이라는 게 어떤 거예요? 됐어요. 일단 가져오세요. 소리를 들어보고 그 때도 실망된다면 내 규환 씨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알았지요?”
“알았어요. 야단맞지 않으려면 크게 보이도록 통이라도 크게 만들어서 담아 와야겠네요.”
“하여튼 그 선물 여하에 따라 규환 씨가 그 동안 내가 얘기한 것들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되니까 잘 해야 돼요.”
“알았어요. 최대한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그날 아침에 버스터미널에 조금 일찍 나와요. 물건들을 챙기려면 서둘러야겠어요.”
 백 선생이 나를 보고 빙긋이 웃는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그 속으로 들어가 봤으면 좋겠다.

 3일 동안 밤잠설치며 전축(AMP)은 내가 직접 만들었고, 4개의 일제 스피커는 통 2개를 만들어 그 속에 2개씩 나누어 각각 부착하였다. 
 스피커 통 2개와 기계를 이웃집 아저씨가 지게에 지고 버스터미널에 오니 백 선생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건들은 차 아래쪽 짐칸에 싣고 우리가 자리 잡고 앉자 백 선생이
“전축이 생각한 것보다 큰데요? 어쩐 거예요?”
“내 손으로 만든 거예요. 통만 크게 만들었어요. 어찌됐건 지금은 아무 말 하지 마세요. 나중에 소리를 들어보고 그 때도 싫다면 나는 도루 가져갈 거예요. 제발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그 얘긴 그만해요. 학교에 가서 전축을 틀어놓고 그 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자연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 주세요. 가끔 산속에 들어가서 산새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면 음악이 자연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나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내가 만든 전축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백 선생이 놀랄 표정을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전축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다. 공군에서 3년 복무기간동안 부지런히, 악착같이 전자기술을 배운 것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그로 인해 지금의 직장을 가지리라고는 어느 정도 예측했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축을 만들어 선물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백 선생에게는 가장 어울리고 가치 있는 선물이 될 것이고, 내가 백 선생과 만난 것이 이 전축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은 것이다.
“네. 맞아요. 음악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원천이 자연이에요, 세상이 자연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음악은 자연을 직접 또는 상상력으로 표현해낸다는 말이 되는 거예요. 어떤 작곡가는 자연의 4계절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적도 있어요. 자연을 표현해내는 데는 음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글과 그림으로도 할 수 있어요. 규환 씨는 왜 이런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찾아보려 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규환 씨는 똑똑해요. 지금까지 배운 자연에 관한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하면 자연에서 지혜를 찾는다는 말이 되요.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을 뜻있게 하기 위해서는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요. 예술활동은 그 작업의 일환이에요.. 규환 씨도 언젠가는 신경 쓸 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하면 가치 있는 삶이 될까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에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 런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에 내가 하고 싶은 건 백 선생과 탁구치고 싶다는 거예요.”
“체- 규환 씨는 내 말을 어떻게 들어요? 내가 처음에 뭐라 그랬어요? 내게서 음악을 빼버리면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요. 탁구는 내게서 별거 아니에요. 탁구는 살아가면서 누구와도 칠 수 있고 배울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은 중요한 것이고 배우기도 쉽지 않아요. 또 음악은 자연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음악을 안다는 것은 자연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는 음악을 듣고 버스 안에서는 자연을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
“알았어요. 난 단지 탁구가 더 재미있다는 생각으로 해본 소리에요. 그리고 거기서 백 선생의 마음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고개에 있는 동내(매곡동)에서 버스가 정거하고,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면 방송실은 바로 몇집 지나 있었다. 중학교는 비스듬히 아래쪽으로 1km 정도 내려가야 있다. 
 물건들을 니어커에 싣고 손잡이 양쪽을 서로 나누어 잡고 학교 쪽으로 내려가니 정말 기분이 좋다. 우리가 알고 지낸지는 2개월 정도 되었지만 이렇게 2사람이 함께 걸어가기는 처음이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는데 할 말이 뒤죽박죽이 되어 무슨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잘 안 난다. 슬쩍 곁눈질로 백 선생을 보니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무 말을 해도 다 받아줄 듯 보였다. 
 키 큰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는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산들바람이 스쳐지나가니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우리가 니어커에 짐을 싣고 가니 혹 누가 보면 우리가 이삿짐을 싣고 이사 가는 부부인줄 알겠어요.”
“?”
“그렇게 생각 안 들어요?”
 백 선생이 쭈빗쭈빗하더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한 가지가 부족한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여 지체 없이 물어 보았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내 등에 애기가 엎여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맞는 말이다. 애기는 우리가 부부라면 그것을 결정지을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애기라면 우리들의 애기를 말하는 건가요?”
 백 선생은 내 말에 대답은 않고 그저 웃고만 있다.
“나는 백 선생이 버스 안에서 하는 자연의 얘기나 학교에서 하는 음악얘기가 아닌, 이런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좋은 예기를 한 번 듣고 싶어요.”
 백 선생은 계속 아무 말 않고 미소만 짓고 있다. 내가 참다못하여
“빨리 얘기해 봐요. 이대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맞아요. 생각해보니까 이런 분위기에 어울릴 수 있는 딱 하나의 얘기가 있네요. 어차피 한 번은 해야될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럼 어서 얘기 해봐요. 나와 관계있는 예긴가요? 백 선생의 얘기는 뭐든지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네. 우리의 얘기에요. 그렇지만 오늘은 나에 대한 얘기만 하겠어요. 나의 지난 얘기를 잠깐 하겠어요. 그 전에 규환 씨가 약속해줄 것이 하나 있어요.”
“약속이라뇨? 뭔데요?”
“그것은 음악을 통해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과 모든 사물의 본성을 음악을 통해서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음악을 통해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요? 그리고 모든 사물의 본성을 간파할 수 있다고요? 그 만큼 음악이 중요하다는 건가요?”
“네. 음악이 모든 일의 기초가 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음악을 가까이 한다면 그것이 곧 나를 가까이하는 것이 되기도 하고요. 약속해줄 수 있죠?”
“네. 약속하겠어요. 그러니 얘기를 계속해 주세요.”
“내가 이 학교에 온지가 3년이 거의 됐어요. 그 전에는 집에서 어머니를 도와 옹기장사를 하느라 취직은 별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외삼촌이 찾아와서 적극 추천을 하시더라고요. 넓은 세상에서 한 번 인생을 경험해 보라는 거였어요.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는데 근무지가 시골중학교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어요. 오가는 동안 정신적인 훼방감이 특히 좋아하는 자연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래서 다니게 되었는데 생각대로 시간이 참 많았어요. 담임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주중에 수업시간이 없을 때는 일찍 퇴근할 수도 있었고 특히 토요일에는 아예 출근하지 않아도 됐어요. 대신 교실 증축관계로 외부인들의 방문이 잦아서 일요일에 일직삼아 출근하게 되었던 거였어요.
 처음 1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어요. 2년째는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이 되었고, 내 시간도 많아졌어요.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을 많이 가졌던 자연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특히 버스 안에서 창밖의 넓게 펼쳐진 들판과 멀리 산들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할 때는 모든 게 술술 잘 풀렸어요. 생각에는 분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음악도 곁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쩔 수 없었기에 음악은 학교에 가서 보충했어요.
 그러기를 1년 정도 지나니까 서서히 자연에 조금씩 통찰이 되더라고요. 자연의 이치가 조금씩 밝혀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것은 자연을 창조한 신(神)의 의중이 파악되어 간다는 뜻이었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서서히 생각지도 않은 괴로움이 닥쳐왔어요. 그 괴로움은 큰 외로움이었어요. 신(神)의 창조가 창조만으로 전부가 아니었던 거예요. 신(神)의 의중을 알아주는 인간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창조가 완성이 되는 거였어요. 그와 같은 이치로 나의 창조도 받아줄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던 거예요. 이렇게 신(神)의 창조(지혜)가 받는 사람이 있어 행하여질 때를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거예요. 가슴이 폭발할 정도로 사랑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는 거예요. 그 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신(神)과 인간사이의 경우이든 인간끼리의 경우이든 사랑이 행하여졌을 때 서로에게 커다란 기쁨, 행복이 온다는 것을 한참 뒤에 알았어요.
 외로움에서 헤매고 다니던 어느 날, 다행이도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준 사람이 불쑥 나타났어요. 마치 천사가 오듯이 말이에요. 그 사람이 규환 씨였어요. 규환 씨는 내가 꼭 만나야할 그런 사람이었어요. 너무나 순수했고 또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에요. 규환 씨 정말 고마워요.”
 백 선생의 얼굴이 순간 숙연해진다. 
“아니오. 나는 백 선생에게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요. 그저 좋아서 따른 것뿐이에요. 그런데 뭘 고맙다는 거예요?”
“사랑은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주는 건 내가 했고 규환 씨는 받기만 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던 거예요. 난 규환 씨를 만나서 비로소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나는 정말 행복해요. 그래서 고맙다고 하는 거예요. 규환 씨는 지금 행복하지 않으세요?”
“우리가 지금 사랑하고 있다고요? 정말일까? 꿈같은 얘기네요. 나도 그동안 행복하긴 했어요. 그랬다면 그것이 사랑의 결과란 말이지요?”
“사랑의 결과를 물적으로 보여준 것이 또 하나 있어요. 그것이 전축이에요. 규환 씨는 전축으로 나에게 선물을 준비하면서 행복했어요?”
“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정말 행복했어요.”
 내게 전자기술이 있었고 그것을 살려 백 선생에게 전축을 선물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것이 물적인 사랑이에요. 반면에 내가 준 것은 정신적인 사랑이고요. 물적인 사랑을 다른 표현으로 자비를 베푼다고들 해요. 어떤 면에서는 그 전축이 우리들 사랑의 결실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나는 내가 가진 정신적인 것 즉 내가 가진 중요한 전부를 규환 씨에게 주었고 규환 씨는 그것을 받아준 거예요. 전축은 우리가 사랑했다는 것을 남긴 증거물인 셈이지요. 내가 처음에 규환 씨가 전축을 선물한다고 했을 때 한참 생각했어요. 주저했었단 말이에요. 정말 규환 씨가 내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일까? 그러려면 전축의 기능이 가치 있는 좋은 것이 돼야 했어요. 지난번에 전축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전축이 내가 얘기한 것들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을 때 규환 씨가 곧 바로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는 그 때 이미 모든 것을 다 이해했어요. 지금 바로 학교에 가서 전축을 틀어보지 않아도 그 전축은 굉장한 것이 틀림없어요. ”

우리가 학교에 도착하여 직원실에 들어가자 먼저 책상들을 조금씩 뒤로 물려 공간을 만들어 두개의 스피커 통은 우리가 앉을 자리와 정 삼각형이 되게 앞에서 양쪽으로 하나씩 배치하였다. 그리고 각 기계들을 전선으로 연결하였다. 백 선생이 캐비넷에서 음반 한 장을 골라내어 플레이어에 올려놓고는 빙긋이 웃으면서 나를 처다 본다.
“이제 이 전축에서 나오는 소리가 규환 씨의 운명을 좌우할 거예요. 이제 틀어도 될까요?”
“네. 주저 말고 틀어 보세요.”
 나는 자신이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을 전축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그 노력의 대가가 곧 나타날 것이다.
“아 참 곡목이 뭐예요?”
“가극 카르멘의 서곡이에요. 전번에 우리가 카르멘에 나오는 곡들도 들어보았고 그 음반도 내가 선물했잖아요. 기억 안 나요?”
“하바네라 등 몇 곡은 들어봤지만 서곡은 안 들은 것 같은데요?”
“그랬어요? 서곡이 그 오페라의 전체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럼 한 번 들어 보자고요. 음질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곡이 될 거예요.”
 다시 백 선생이 손가락으로 픽업(바늘 뭉치)을 들고는 음반에 앉힐 듯 하면서 빙긋이 웃으며 나를 처다 본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스피커에서 음이 강하게 퍼져 나왔다. 순간 나는 음이 내 몸에 꽉 찰 때가 음악 감상에는 가장 좋은 분위기가 되는구나 생각했다. 순간 백 선생도 입이 딱 벌어지더니 내게로 몸을 돌려 잽싸게 내 볼에 키스하였다. 순간적이었다. 
“규환 씨 고마워요. 훌륭한 선물을 줘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완벽할 줄은 생각 못했어요. 대구에 있는 음악 감상실의 전축보다 음질이 더 좋은 것 같아요.”
 백 선생이 이토록 좋아하니 내 마음도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다. 백 선생이 내 손을 잡고 박자에 맞춰 힘차게 흔들어 주었다. 좋은 음악이 백 선생에게 힘을 솟구치게 해주는 것 같았다. 음이 양쪽 스피커에서 넓게 퍼져 나오니 음의 스펙트럼이 보이듯 했다.
“좋은 전축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규환 씨 덕분에 소원이 이루어지나 봐요. 규횐 씨 정말 고마워요,”
 나로서는 집에 있는 부속들을 활용하여 큰 부담 없이 만든 것인데도 백 선생에게는 꼭 필요한,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행복했다.

               



             Long, Long Ago(2)

백 선생과 헤어지고 5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동안 백 선생을 한 번도 잊어본 적은 없지만 백 선생이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음악의 중요성은 잊고 가까이 하지 못했다. 언제나 좀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근래 음악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매일 음악을 즐겨듣고 생기를 얻고 행복한 날이 계속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한 번은 버스를 타고가다 중요한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버스 안이 너무 시끄러워 이어폰을 끼고 통화하게 된 적이 있었다. 볼일 다보고 집에 와서 언 듯 버스 안에서 통화 때에 음질이 똑똑하게 맑게 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어 보았는데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음질이 이 세상 어떤 전축보다도 좋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알기로는 좋은 음질은 스피커가 크고 좋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음악의 고충실도 재현은 4가지가 맞아야 한다. 1,마이크 2,데이터 저장소(음반) 3,AMP 4,스피커 이다. 지금의 시대에서 이 중에 1, 2, 3은 기술이 발전하여 문제될 것이 없으나 스피커가 문제인 것이다. 음악 감상을 위한 전용 공간이 아닌, 일반적인 장소에서 고 음질의 대형 스피커들을 설치하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크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이런 스피커 문제를 이어폰이 해결한 것이다. 
 나는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지만 집에서 가끔 음악을 듣고 싶은 때를 대비해서 PC에 붙어있는 기존 스피커에 큰 스피커 하나를 밖에 추가해 놓고 듣고 있는 것이다. 음질은 아쉬운 대로 들을 만 하다. 이에 비해 이어폰 음질은 월등하다. 
 보통 전축에 비해서 이어폰으로 들어보는 음악의 장점은 알고 보니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음이 찌그러지지 않는 범위에서 최고 크기의 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을 감상할 때 듣는 사람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간편해서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어디서든 주저앉아 들을 수 있고 또 집에서나 버스 안에서나 옆의 사람에 방해됨이 없이 들을 수 있다. 세 번째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즉 음질이 좋다는 것이다. 소리가 스피커에서 우리 귀의 고막에 전달되려면 공기가 중간 매개체가 되는데 이 때 문제가 발생한다. 소리 중에 약한 소리는 더 약해져 유지되기 어렵고 또 약한 소리는 큰 소리에 영향을 받아 왜곡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어폰에서는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어폰에서는 소리가 공기를 통하지 않고 기계(이어폰의 진동소자)와 고막이 귀 주위의 근육질을 통해서 거의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는 이어폰의 작은 진동소자가 고음, 저음 전체 주파수를 고르게,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된다. 만약에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고 귀 밖에서 공기를 통해서 소리를 듣는다면 같은 음악이라도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천지차이다.

 정말 내 생애에서 이어폰의 성능을 알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 좋은 음질이라 하면 무조건 스피커가 커야 된다고 알고 있어왔는데, 이렇게 조그마한 물체(진동판)가 원음을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니 정말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요즈음 휴대폰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정말 즐겁고, 백 선생이 음악은 반드시 좋은 음질로 들어야한다는 말이 새삼 생각났고 이 이어폰이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했다. 백 선생이 그렇게도 강조했던 음악의 중요성도 다시 새기게 되었다. 
 백 선생이 내게 선물 준 ‘세계애창명곡집’을 펼쳐놓고 기억나는 대로 골라 이어폰을 통해서 노래를 들어보면 그동안 가물가물 멀어졌던 백 선생이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아 정말 즐겁다. 
 자전거를 타고 산 밑의 길을 가다가도 기분이 내키면 산 아래에 자전거를 받혀놓고 양지바른 쪽에 가서 비스듬히 누워 건너편 산의 꼭대기를 보면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조금 크게 틀면 꽉 찬 느낌을 주며 밝고 투명하여 정말 듣기 좋다. 음악이 이렇게 좋아하기는 내가 태어나고 처음이다. 혹 산 꼭지를 배경으로 산비둘기나 까치, 까마귀들이 지나가면 그 새들로 인해 ‘자유’의 소중함을 또 한 번 생각하게 되고, 관련 있는 음악(Una paloma blanca 등)을 틀면 그럴 때는 나도 같이 훨훨 날고 있는 기분이 되어 끝내 준다.  
 혹 무리지어 여러 마리가 날아갈 때는 연대의식이 생각나기도 한다.
 옛날에는 음악 듣는 것이 귀찮았는데, 요즈음은 음악 듣는 것이 정말 즐겁고 신이난다. 이렇게 바뀐 것은 무엇보다 이어폰음질이 좋았기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그동안 터득했던 작은 지혜들이 음악을 이해하는데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좋은 음악의 각 곡들은 작은 지혜의 표현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백 선생이 한 말 중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음악을 통해서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경험하고 있기엔 자연의 소리를 먼저 살펴듣고 난 다음에 흉내를 내어 만든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나중에라도 만나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
 참고로 요즈음 내가 즐겨듣고 있는 음악의 몇 곡목을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1, Home on the range (서목 노래)
 2, 바빌론 강가에서 (Boney M)
 3, 이 근성의 색소폰 연주, 제비(조 영남)
 4, 내 마음의 강물 (강 혜정 노래)
 5, Long, Long ago (Instrument)
 6, Una paloma blanca 
 7, 사랑의 기쁨 (은희 노래)
 8, LA Golondrina (Trio Los panchos)
 9, 아름다운 것들 (김 희진 노래)
10, A little peace
11, 사랑하는 그대에게 (조 아람 바이올린)
12, 토셀리(나이팅겔)의 세레나데 (안드레 류 연주)
13, 석양 (트럼펫 연주)
14, 친구의 이별 (스페인 민요)
15, 사랑을 위하여 (Migi 노래)
16, 봄이 오면 (이 흥렬 곡 남 덕우 노래)
17, 밤하늘의 트럼펫 (To the color)
18, Red river valley (미첼 마틴 머피 노래)
19, 별, (소프라노 강 혜정 노래)
20, 아, 목동아
21, I have a dream
22, 숲속의 작은 새들
23, 희망의 속삭임
24, 가극 카르멘 중 하바네라
25 산골짝의 등불

 이 노래들은 처음부터 내가 좋아했던 곡이 아니고 거의가 백 선생이 옛날에 여러 번 들려주었던 것이 귀에 익어 지금 다시 들어보는 것들이다.  
 이 이어폰음악을 자주 듣는 지금의 나의 일상은 다시 그 옛날(Long, Long ago)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이럴 때 백 선생과 같이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 선생이 이런 지금의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백 선생이 보고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는데, 한 지점에서 갑자기 커다란 장애물에 부닥쳐, 머신이 덜컹 멈춰버린다.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가 물건들을 니어커에 싣고 학교로 가는 대목이었고 장애가 된 것은 백 선생이 얘기했던 ‘우리들의 애기’가 적힌 커다란 간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의 진의를 파악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 말의 의미가 숙제가 되었고 이제야 풀어볼 때가 된 것 같다. 혹 백 선생이 진짜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도에서 한 말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당시 분위기가 결혼이라는 단어와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배우고 가르치는 사이였던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를 배우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백 선생은 왜 애기 얘기를 했던 것일까 그것도 ‘우리들의 애기’를`````
 그래서 그 때 했던 백 선생의 앞뒤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 개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툭 튀어 나왔다.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그렇다면 혹 그 ‘우리들의 애기’는 ‘사랑’의 결실이란 말인가? 그 때 백 선생은 ‘사랑’은 주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대가 있어야 된다고 했고, 그 상대가 나였고 나타나 줘서 고맙다고까지 했던 것이다. 맞다. 그 때에 우리들의 애기가 잉태되었던 것이다. 즉 백 선생은 씨앗을 주었고 내가 그 씨앗을 받아 싹을 틔우고 성장시켜 지금에 이른 것이다. 바로 내가 쓴 글, ‘내 인생의 트라이앵글’이다. 
 백 선생이 준 씨앗의 이름은 ‘자연’이었고 나는 그 자연을 소재로 글을 썼던 것이다.
 백 선생이 정말 보고 싶다. 만약에 내가 ‘우리들의 애기’가 성장하여 세상에 시집보낼 때가 되었으니 뭔가 한 마디 해야 되지 않겠소? 하고 물어 본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그동안 수고했네요’라고 할까 아니면 ‘실망시키지 않았네요’라고 할까.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해도 백 선생만은 해맑은 미소로 이 말 한 마디만 해주면 원이 없겠다.
‘그동안 혼자서 우리들의 애기를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겠어요. 규환 씨답게 잘 썼어요.’
 그리고 우리들의 각시 머리에 족두리 꽃 한 송이를 꽂아준다면 더없이 아름답게 보이리라 생각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