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밤
김천에서 상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 동내에 한 소녀가 살았습니다.
어린소녀는 부지런하여 거의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부터 해 놓고는 이웃의 궂은일을 마다않고 찾아다니며 했습니다.
할머니 혼자 계시는 데는 찾아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주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방에 가서는 대변 받아놓은 것들을 잘 정리하여 갖다 버리고, 더럽다 싶으면 몸을 씻어 드리기도 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이 소녀 한태는 더럽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냄새도 별로 안 났습니다.
어느 집에서 애기를 좀 봐 달라고 하면, 애기를 등에 업고 달래 줍니다. 그러면 아기 엄마는 미루었던 일을 삽시간에 해 치웁니다. 또 바쁜 사람이 있어 풀밭에 매인 소를 몰고 오라하시면 혼자서 그 큰 소를 몰아다 줍니다. 그 큰 덩치에 힘이 센 황소도 소녀 앞에서는 꼼짝 못하고 말을 잘 듯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주일만 되면 교회에는 빠지지 않고 꼬박 꼬박 나갑니다.
그렇게 골짜기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집안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김천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간신히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여자 상업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취직이 쉬워 김천의 유한 캠벌리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워낙 성실하고 착하니 기술부에 있는 한 총각이 그녀를 좋아 하게 되었고, 입사 5년쯤에 결혼하였습니다. 남편 집안이 모두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결혼 하게 되면 교회는 다니지 말라 하여 얘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총각이 워낙 처녀를 좋아 했고 그래서 강행하여, 일단 결혼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 후부터 시 부모님과 며느리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제사 때는 일단 가서 동서들이 준비 하는 데는 같이 거들었으나, 제사 지낼 때는 혼자 슬그머니 빠져 나와 집에 돌아 왔습니다. 그러면 시 부모님은 남편한테
“너희는 조상님을 욕보이고 있으니 이래 가지고 어떻게 집안 꼴이 잘 될 수 있겠느냐?”
하시면서 남편에게 호되게 화풀이를 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신도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첫 아이를 가지면서 힘에 붙여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가졌을 무렵에는 남편마저도 회사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살 길이 막막하여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하였습니다. 식당에 가서 일해 주기도 하고, 전자공장에서 일감을 받아와서 조립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그 뒤 노력 끝에, 남편이 시작한 기계부품 가공 사업이 잘 풀려서 다시 생활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 시간 여유도 생기고 어릴 적 일이 떠올라 무엇인가 내가 봉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은 어릴 때 하고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뭔가 봉사를 해도 좀 더 짜임새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고 배우고 싶어, 김천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38세 이었고 아이가 셋 이였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 그리고 동생 둘이 초등학교 다닐 때 입니다. 원래 배우고 싶은 공부였고 열심을 다 했으니, 공부는 잘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덧, 2년 세월이 흘러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과에서는 최고로 공부를 잘 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여 상을 받던 날,
좌석 맨 앞줄에 시 부모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가 박수치는 가운데서, 상장과 부상을 받아 들고는 곧장 시부모님 한데로 향했습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또 참으며 걸었습니다. 기어이 그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자 시어머님은 며느리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아가야 아니다, 너희들은 잘 하고 있는데, 또 잘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생각이 짧아 우리 입장만 생각했구나, 너희들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못 했구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너는 정말 우리 집안의 장한 며느리야, 더 열심히 하여 좋은 일 많이 하여라, 고맙다.”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어머님과 며느리는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잠자리에 들면서 남편이 싱긋이 웃으며 멋쩍은 표정으로
“나도 이번 주일부터 슬슬 교회에 나가 볼까”
하자마자 그녀가
“관둬요”하면서 말은 톡 쏘았으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사 때 뿐 만아니라 수시로 부모님한테서 그렇게 야단을 맞고도 집에 와서 내색 한번 않고 언제나 감싸주고 격려해주는 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은 자기와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참고 기다리자, 지금당장은 혹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릴지도 모른다. 이전보다 더 부모님께 잘하여 사랑스런 며느리가 된 다음에······./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어느덧 이불 속의 그녀의 손은 남편의 손을 잡아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당신이 부모님과 나 사이 틈에서, 마음 고생한 것 다 알고 있어요. 오늘 모든 것이 이렇게 잘 풀리고 보니 나는 정말 행복해요. 이 모든 것이 당신이 그동안 나에게 너무나 잘 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 이라 생각해요. 여보, 정말 고마워요.”
그러자, 남편이 그녀의 귀에 속삭이듯 말 했습니다.
“당신은 꿈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요. 그리고 귀여운 나의 아내요. 정말 사랑스러워요.”
하였습니다.
그날 밤은, 이들에게는 유난히도 아름다운 밤이 되었습니다.
(주: 지금도 그녀는 아포읍사무소 근처에 있는 어느 노인복지센타를 운영하면서 바쁘게 노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