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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의 사랑(상)

환오 2020. 4. 27. 10:50

조물주의 사랑()

 

1년에 딱 한 번 있는 진달래와의 데이트, 올해는 좀 색다르게, 뜻있게 보내기 위해서 뭔가 자그마한 이벤트를 준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카페라떼 한 잔 대접해 보려는 것이다.

바로 산 밑, 가까이 있는 봉자 카페에서 라떼 한 잔과 과자 한 봉지를 준비하여 산으로 향했다.  

산 중턱 바로 아래 우리의 아지트 가까이 올라가자 라떼와 과자가 든 봉지를 등 뒤에 숨겼다. 그 때 그녀가 내게 책을 선물할 때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그 귀중했던 책 선물에 대한 보답을 수십년(70년 가까이)이 지난 지금에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상대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나의 큰 결점이었다. 오늘은 이것이 깨지는 날이 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결점 때문에 좋은 사람을 여러 번 만나서도, 쉽게 헤어지곤 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시골중학교 음악선생과의 만남이다. 더할 수 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는 받기만 했을 뿐 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만났던 분들은 모두 좋으신 분들이었고 내 인생에서 소중한 분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 분과의 만남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큰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다. 그 분을 통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금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이 큰 슬픔을 준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것을 절실히 깨닫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고, 오늘은 특별히 내가 근래에 많이 생각하는 친구, 분홍치마 진달래에게 잘해주고 싶어 라떼 한 잔 들고 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 평생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이고, 그래서 오늘은 나도 점수 좀 따보려 하는 것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1년 동안 기다렸던 만남이었기에 기쁘기도 하련만,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남의 기쁨을 어떤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끌어안던가 아니면 악수라도 할 법한데 그러지를 않고, 언제나 우리는 은은히 번지는 미소로 표정 살피기에만 바빴든 것이다. 나는 더 성숙하고 아름다워진 진달래의 색깔이나 맵시를 먼저 살펴보는데 신경 썼고, 진달래는 봉오리가 곧 터질 것같이 흠뻑 미소를 머금고, 여기 저기 내 몸의 건강상태부터 살피는 것이었다.

오늘도 그런 시간이 잠시 지난 뒤에야 나는 등에 숨겨왔던 비닐봉지를 그녀 앞에 불쑥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펼쳐지면서

이게 뭐에요?”

궁금하면 받아서 한 번 펼쳐 봐요. 지금까지 나를 생각해준 그 마음에 대한 나의 조그마한 보답이에요.”

웃고만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내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 순간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생각했다. 진달래에겐 선물을 받을 수 있는 팔과 손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잽싸게 비닐봉지를 풀고 라떼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 내가 한 목음 마시고 또 한 목음은 진달래의 뿌리 짬에 부어주니 쪽쪽 잘 빨아 먹는다. 간간이 과자 부스러기도 뿌려주자 그제야 얼굴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어떻게 이런 선물할 것을 생각하시게 된 거예요? 선생님을 다시 봐야겠어요. 그저 수수하기 만한 선생님께 이런 센스가 있는 줄은 정말 몰랐어요. 뜻밖이네요.”

뭘요, 이 정도는 보통이에요.”

확실히 내 아이디어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진달래도 기분 좋아 보였고, 나도 기분 좋다.

라떼는 제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던 거예요. 누구든지 저에게 먼저 라떼 한 잔 사주는 그 사람이, 제가 사랑해야할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선생님은 좀```` ”

듣기에 정말 섭섭하네, 점수 좀 따려고 이 라떼를 김천, 그 먼 거리에서 사가지고 여기까지 가져왔는데 이런 고생을 알기나해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있다가 더 가치 있는, 우리 사이와 관련하여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해드릴까 해요. 얘기를 듣고 나면 섭섭한 마음이 조금은 풀리실 거예요.”

그런 흔하디흔한 사랑얘기 같은 건 들을 필요도 없어요. 이제 진달래님의 마음을 다 알았으니 앞으로는 신경 쓸 일도 없을 것이고, 마음은 편할 것 같아요.”

-, 삐치신 거예요?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닌데````` ”

이러는 사이 라떼도 과자도 바닥이 났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진달래의 꽃잎 모양이 라떼 속의 사랑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라떼 속의 행운이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트모양으로 변하면서 내 몸이 자석처럼 그녀 쪽으로 끌려간다. 그러자 그녀가 내 뺨에 살짝 키스하였다.

/! 이 키스, 맞아 그 옛날에 음악선생이 내게 첫 키스했을 때의 황홀함,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톡 쏘는 맛이 바로 그 때와 똑 같은 것이야./

내가 그 때의 기분에 빠져 영혜씨! 영혜씨! 하고 이름을 불러보는데 갑자기 진달래가

조금 전에 말씀하신````”

아잇 깜짝이야! 갑자기 말을 하니까 꿈이 다 깨져버렸잖아요.”

너무 가까이 있어 말소리가 크게 들렸던 것이다.

헛기침을 먼저하고 말을 하던지 해야지 깜짝 놀랐잖아요.”

어찌됐던 죄송해요. 무슨 꿈을 꾸셨길래````,”

몰라도 돼요! 나 혼자만 아는 비밀 이예요.”

내가 퉁명스레 얘기하자 멋쩍었는지 기운 없이 시무룩해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분위기가 내 마음과 다르게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같은 좋은 날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살짝 옆 눈으로 살펴보니, 진달래가 아니었다. 웃음이, 환한 미소가 사라진 꽃은 더 이상 진달래가 아니었다. 내가 진달래의 그 밝은 미소를 빼앗았다고 생각하니 죄를 지은 기분이 되었다.

아까 우리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했어요?”

,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변했어요. 얘기 안하기로 했어요.”

아니에요, 내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아까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얘기해 주세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두 손 싹싹 빌었다. 내 뜻이 통했는지 진달래의 미소가 서서히 돋아난다. 마치 동쪽에서 태양이 솟아나는 것 같다.

앞으로 마음 변하는 일은 없기로 우리 약속해요.”

진달래의 말에 나는 작은 가지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사랑은 어떤 태풍이 불어도 꼿꼿하게 버틸 수 있고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아름다운 것, 사랑한다는 것 즉 사랑은 이런 것들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드는 거예요. 가치 있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가지는 거예요.”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질 못했어요.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가치 있는 것을 찾아 내 것으로 만들어 가지는 일이예요 이것을 또 줄이면 사랑은 받는 것이 되지요.”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받는 것이라니 조금 이해하기 힘든 데요.”

주는 쪽도 있고 받는 쪽도 있는 것이 사랑이지만, 크게 보아서 주는 쪽은 준비 끝내고 사랑을 기다리는 형편이고, 사랑이 이루어지려면 받는 쪽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양쪽을 뭉쳐서 사랑이란 한 단어로 표현해도 무리는 없어요. 여기에는 사랑은 내려간다는 뜻(내리 사랑)도 포함되어 있어요.”

, 알았어요.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을 내 것으로 가진다고 했는데, 그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름다움 이예요. 아름다움에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외적 아름다움이고 또 하나는 내적 아름다움이에요. 외적인 아름다움은 단순한 겉치레이며 관심을 끌기 위한 유혹이고, 내적 아름다움은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 그 사물(인간을 포함)이 고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치와 존엄 그리고 품성 이것들을 모은 것이 아름다움이에요, 사랑은 다른 사물에 있는 이 내적 아름다움을 찾아내어서 나의 아름다움으로 만드는 행동이에요. 가지게 된 그것을 나중에 때가 되어 누군가가 필요해서 줄 때, 그 행동을 선행(善行)이라 하고, 이 때 가져가는 쪽은 또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선행과 사랑은 아름다움을 싣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거예요. 내적 아름다움은 정신적인 것이고, 만약 이럴 때 주고받는 것이 물질적인 것일 때는 사랑이라 하지 않고 자비(慈悲)라고 하는 거예요. 이해가 되요?”

대충은 이해하겠는데, 자세한 것은 좀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랑하는 것 즉 그 사물의 가치와 품성을 찾아내는 작업 즉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전문적으로 찾아내는 작업을 예술작업이라고 해요. 예술(藝術)은 글로서, 그림으로 또는 음률(音律)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감정(感情)에 담아내는 것입니다. 크게 보면 선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가의 활동은 사랑과 선행(善行)을 잇따라 하게 되고, 그 영향이 넓게 미치는 중요한 것이기에, 자연을 잘 관찰하여 누구나 공유해도 좋은 진실, 즉 아름다움을 밝혀야 돼요. 예술가가 자연을 얘기하다 보면 때로는 황당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럴 땐 아름답게 봐 주셔야 돼요. 이쯤에서 선생님께 질문 하나 드레겠어요. 저를 아시고 난 이후에, 저로부터 정신적인 뭔가를 가져가신 것이 있었어요? 이 질문은 저와 선생님 사이에, 사랑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대답은 천천히 하셔도 돼요."

지금 당장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볼 때 내게 필요한 것들이 도시나 학교에서 보다도, 이 숲속 그리고 여기 친구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내가 진달래를 좋아하는 것도 이 사실 때문일 거예요. 왜 그렇게 되는지 이유는 잘 모르지만요.”

내일 또 오실 거죠?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내일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기로 해요. 오늘 선생님의 건강하신 모습 뵙고, 너무너무 반가웠어요. 오래도록 건강하십시오. 여기 우리 숲속 친구들이 응원할게요.”

고마워요.”